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1055 호 25페이지기사 입력 2024년 04월 22일 (월) 09:40

독자투고

내가 복 받게 생긴 일 -김석원(율하동)-

  급한 약속이 있어 퇴근길에 택시를 탔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차들이 정체되고 있었다.

 "차들이 앞에서 움직일 기미가 안보이네요." 이웃집 아저씨처럼 넉넉해 보이는 풍채의 택시기사님은 자꾸만 앞쪽을 살폈다.

  나도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보니 저 앞에 종이 가득한 리어카를 끌며 휘청휘청 걸어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오르막길에 다달아 넘어가지 못하는 폐 종이를 가득 실은 리어카. 나는 그 광경을 힐끔힐끔 보며, 종이의 엄청난 양에 놀랬다.

  그 리어카 한 대가 가파른 언덕을 곰실곰실 오르자니 속도도 안 나고 뒤 차들이 밀려버린 상황.

  안되겠다 싶어 택시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에서 내려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드렸다. 예상보다 리어카는 훨씬 더 무거웠다.

  그 오르막길이 삶의 가파른 여정인 듯, 할머니는 다 올라선 뒤 리어카를 잠시 세우고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깊은숨을 내쉰다. 

  오르막은 해결되었지만 나는 저 앞에 학교 과속방지턱을 보고 저건 또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에라, 오늘 약속은 좀 늦자’하며 나는 할머니와의 동행을 선택했다. 다시 출발한 리어카 뒤에 따라가다 보니 할머니 허리는 기역자요, 나이테처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두툼한 몸빼 바지에 누비옷을 입고 낡은 면장갑 낀 손으로 리어카는 끄는 할머니는 하얀 웃음을 잊지 않으셨다.

  삐걱거리는 리어카의 녹슨 바퀴도 할머니의 무릎만큼 버거운 소리를 내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인다.

  "돈 많이 벌으셨어요?"

 많이? 이게 부질없는 질문이라는거 알면서 할머니의 가쁜 숨소리를 좀 쉬게 해드리고 싶어 여쭈었다.

  "돈벌이는 무슨 돈벌이가 돼요? 그래도 감사하면서 살아요.... 움직일 수 있으니...."

 뒤에서 보니 할머니는 짐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고 그 위에 보이는 도시의 하늘은 잿빛이다. 하늘에 별들이 마중 나오기 전에 들어가셔야 할 텐데..

  과속 방지턱 3개를 무사히 넘긴 뒤 조심해 가시라는 인사를 드리자 할머니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며 고맙단 인사를 건네신다.

  그러나 내가 더 감사하다. 할머니가 들려주신 "그래도 감사하면서 살아요"라는 말이 내 가슴을 참 넉넉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난 나더러 친구가 “넌, 복받을 거다”라고 한 말이 제일 행복하다.



김석원(율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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