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1050 호 27페이지기사 입력 2024년 02월 29일 (목) 10:10

영험한 신어산이 감싸는 분지 “삼방동”을 소개합니다

옛 천(川)이 흐르며 마을이 생기고 지식인들이 사회를 이끌며 백성과 함께 지켜온 곳

비주얼 홍보

  • 삼방동

‘삼강(三綱)의 꽃다운 세명이 있는 마을, 삼방(三芳)’



고천 공원(삼안로112번길 79-20)은 택지개발 전 계내, 고천마을의 명칭을 따라 명한 것이다. 고천이란 옛 천에서 마을이 생겼다는 뜻으로 아 공원에서 인제대학교 방면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관천재 (觀川齋,삼안로 297번길 30-18)가 나온다. 임진왜란 사충단의 한분 이며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김해성을 지키다 순국한 이대형 의병장군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재실이다.

이대형 의병 장군은 김득기, 유식, 송빈 과 함께 김해 읍성을 방어하다 전사하여 충(忠), 부친의 시신을 수습하다 죽은 아들의 효(孝) 그리고 왜군에게 정절을 뺏기지 않으려 자결한 질녀 이씨의 열(烈)을 삼방이라 불렀다. 부산 동래성 함락 후 김해 부사가 성을 버리고 달아난 급박한 상황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키고, 잡힌 후에도 항복 권유를 물리치고 전사했다는 이야기는 군인이 아니던 그가 유교적인 도덕 실천에 앞장서 백성을 이끌던 향촌 지도자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선산에 묻히지 못한 순교자 삼방동 조씨 형제 이야기’



고천공원의 남쪽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조이추를 제향하는 문중서원인 예암서원 (禮巖書院,삼안로112번길 36)이 있다. 조선 후기 문중이 발달하면서 집안 인물을 제향 하는 서원이 늘어났다. 예암서원은 임진왜란 이후 고을 향약을 크게 바꾼 조이추의 제사를 지내며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삼방동에 향약을 굳건히 하며 지역교육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1989년 천주교 부산 교구에서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삼방동 조씨 형제 순교자를 발굴 하였다, 한문 성경을 한서 속에 감춘 나무 상자를 메고 양반 집안 등을 찾아다니며 천주학을 전하다 김해 왜장대에서 참수당한 조석빈과 조석증 형제는 그의 6세손으로, 유교 집안인 문중의 반대로 선산에 묻히지 못했고 그 당시 뿌리 깊은 유교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입신양명하여 중앙의 높은 관리가 되었으나, 홀 어미니를 모시러 낙향한 어영준’



고천공원에서 신어천 상류 북쪽으로 가면 영운 마을이 있다. 여기에는 함종 어씨의 재실인 영운재 (인제로 398번길)가 있는데 조선 전기, 홍문관박사, 수찬, 군기시부정 등을 역임한 문신 어영준을 모시는 곳이다. 김해읍지에 전해지는 후손이 남긴 글을 보면 꽤 어질고 덕망이 높았음을 알수 있다. 영운 마을은 예로부터 영웅이, 영운이 불리며  지대가 높고 안개가 끼는 일이 많아 산신령이 구름타고 내려와서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김해 유치원부터 영운 초, 중, 고등학교가 보이고, 좌우로 김해 대학교와 인제 대학교가 있다. 이렇게 삼방동에 교육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것도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김해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이 많이 배출 되어 명품도시 김해로의 도약을 기대한다,

- 라연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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